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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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 One More Final: I Am Sorry. Again


붉은 LCL의 바닷가에서, 소년, 이카리 신지는 소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목을 조른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가, 그런 것은 신지 본인도 알 도리가 없다. 서드 임팩트가 진행되던 도중 릴리스 안에서 들었던 아스카의 그 무수한 거절의 말들 때문에? '곁에 오지마', '넌 날 상처입힐 뿐이야', '누구라도 좋은 거잖아, 내게로 그저 도망치고 있을 뿐이잖아', 그리고  '하지만 너랑과는, 절대로, 죽어도 싫어'. 그렇다면 그 말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네가 전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나, 아무 것도 소용 없어'? 무엇이 그녀의 '진심'인가? 아니 그녀에게 애당초 '진심'이라는 감정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여전히, 신지는 알 도리가 없다.


마지막 문턱에서 저지된 서드 임팩트, 그럼에도 결국 전 인류의 LCL화는 막지 못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A.T 필드 따윈 모두 걷어젖히고 모두가 하나가 되자는 제레의 인류보완계획은, 저지되었으되 저지되지 못했다. 생명으로 넘쳐나던 이 세계에서 이제 LCL에 동화되지 않은 존재라고는 자신과, 지금 자신이 내려다본 채 목을 조르고 있는 이 상처입은 소녀 단 두 사람뿐. 이 현실같지 않은 현실을 그녀는, 아스카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것인가. 완강한 거절? 질타? 분노? 증오? 분명 그럴 것이다. 도리어 그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는 병실에 누워 있는 그녀를 앞에 두고 그렇게나 '추잡한 짓'을 벌이지 않았던가, 기사회생한 직후에도 네르프의 존망을 걸고 아홉 기의 양산형 에바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했던 그녀를, 자신은 '에바에 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방관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결과는... 


그런 짓을 저지른 남자를 상대해 줄 여자가 있을 리 없잖아, 신지는 생각한다. 그런데도 왜 그녀는 그에게, 감히 자신의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는 이 '한심한' 소년 이카리 신지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부상 당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된 마당에야 차라리 누군가의 손에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실수한 거야,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아까 전에 서드 임팩트를 긍정해버릴 걸 그랬어, 왜 하필 아스카인거야, 왜 하필이면 나하고 아스카 단 둘이서만 살아남은 거냐고. 엄마도 그래, 모두들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돌아온 건 아스카 단 하나 뿐인거야. 모두들 뭐가 그리 기분 좋다고 다들 저렇게 돌아오지도 않은 채 LCL 상태로 둥둥 떠다니고만 있는 거야. 내가 원한 건 '그 때의 마음'이었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차피 아스카는 날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게 너무나도 뻔한데. 


웃기시네, 신지의 마음 속에, 또다른 목소리가 살며시 속삭인다. 너 바보니? 사실은 너도 이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 아니었어? 뭐가 그리 불만인건데? 이렇게 된 이상 그 애가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게 되는 거잖아?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될 걸 가지고, 한심하기는. 아스카, 내 마음을 거절하지 말아줘. 날 상대해줘. 나한테 신경써줘.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줘. 아스카가 존재하지 않는 그 때의 마음이라니, 그런 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아스카, 내 마음이 무너지도록 놔두지 말아줘, 닫혀버리게 놔두지 말아줘. 내가 널 이렇게 목 조르도록 놔두지 말아줘. 가능성을, 부정한다, 긍정한다, 반복되는 두 흐름의 무한반복. 왜 하필 아스카인거야. 거짓말, 넌 그녀를 원하고 있었어. 아니야, 난 그녀가 두려워, 그저 두려울 뿐인데, 두려워서 달아나고 싶을 뿐인데, 이럴 거면 차라리 서드 임팩트로 나도 그녀도 모두 다 끝장나 버리는 편이 나았을텐데. 거짓말, 아스카가 나에게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조금만 나를 신경써주고 생각해 줬더라면, 그랬더라면 내 마음은 그렇게 쉽게 닫혀버리지 않았을지도 몰라. 허물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따뜻함이, 없었어? 그녀에게? 정말로? 내가 널 이렇게 목 조르도록 놔두지 말아줘.




붕대를 감은 아스카의 오른손이, 서서히 허공을 향해 들어올려진다. 신지는 두 눈을 멍하니 뜬 채, 그 모습을 초점 없이 응시한다. 아스카의 가냘픈 목을 움켜쥐고 있던 그의 손은 이미 힘이 다 풀린 나머지 도리어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귀인가, 그러나 그녀의 그 손은, 부드럽게, 천천히, 그의 왼쪽 뺨을 한 번 쓰다듬고 살며시 땅 위로 내려앉을 뿐이다.




그 다음에 신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혹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이카리 신지는, 그대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몸 위에 무너져 내린다. 무너진 몸을 들썩이며 아스카의 뺨 위에 굵은 눈물 방울을 하나 둘 떨어뜨린다. 신지는 알 수 있었다. 이번만큼은 '바보 신지'인 그조차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따스함이었다. 다정함이었다. 그의 마음에 대한 그녀 나름의 긍정이었다. 아스카는, 자기 자신을 앞에 두고 벌인 신지의 '추잡한 짓'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의 우유부단함이 그녀 자신이 참혹한 꼴을 당하는 데 일조했음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릴리스의 몸 안에서 그의 진심을 알고 난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그의 뺨을 따뜻하게 '쓰다듬었던' 것이다. 설혹 그녀가 그 어떤 날선 말과 행동으로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왜곡하고 가리려 든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아스카 다운' 자존심의 발로에 불과하리라.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신지는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기뻤다. 단둘이 살아남은 세계에서 거절받지 않는다. 하지만. 신지의 생각은 그로부터 다시 한번 나아간다. 애당초 '왜' 단둘이 살아남게 되어버린 것인가? 이 참혹한 현실은 '누구의' 선택에 의해 빚어진 결과물인가? 그것은... 이카리 신지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쓰디쓴 죄책감에 몸을 떨면서, 신지는 답하고 싶지 않은 그 물음에 무겁게 답한다. 나 때문이야. 인류보안계획. 사해문서에 처음으로 계시되었고, 위원회의 노인들과 신지의 아버지 이카리 겐도가 저마다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추진한 계획. 그러나 정작 그것이 실제로 발현되었을 때, 그 달성 여부를 결정하는 최후의 방아쇠를 쥐고 있던 것은 결국 누구였던가. 롱기누스의 창과 동화된 초호기를 따라 빨려들어간 릴리스의 몸 안에서, 이카리 신지는 결국 종극으로 치닫는 하나의 문장을 생각했고, '모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변명의 여지가 아주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지탱해주던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망가져갔다, 돌연히 나타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던 또래의 친구-비록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지만-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 외부의 인물이 보완계획을 둘러싼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설령 진실을 온전히 알았다고 해도 14살짜리 소년 혼자의 힘만으로는 그런 거대한 음모를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없었다? 신지는 문득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정말로? 정말로 막을 수 없었어? 




이번에도 신지는 답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신지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답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죄책감? 뒤늦은 후회? 자기혐오? 자기위로? 아니면 그 모든 것들? 아스카의 몸 위에 머리를 묻고 흐느끼면서, 신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연거푸 되새김질 해낸다. 미안해. 막지 못했어. 막을 수 있었는데. 막으려고만 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이런 결과를 바랐던 건 절대 아니었는데. 이윽고 이어지는 만약의 영역.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부서지지 않았던 그 때의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도망치지 않고 분명히 맞설텐데, 부서지기 전에 온전히 지켜낼텐데, 이런 끔찍한 결말 따위 반드시 피해갈 수 있을텐데. 다시 한번 또다른 목소리의 속삭임이 들렸을지도 모른다. 현실도피야. 미안해, 너무 늦어버렸어. 미안해, 내가 부숴버리고 말았어, 상처입히고 말았어. 미안해,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다시 모두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미안해, 또 도망치고 있는 거야, 자신이 초래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그저 싫은 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달아나고만 있는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소년이 소녀의 목을 조른다. 

소녀가 소년의 뺨을 쓰다듬는다. 

소년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다. 

세상은 멈춰 있다. 모든 것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버렸다. 시간마저 멈춘 듯 느껴진다.    





"기분 나빠."


그리고, 소녀의 그 한 마디와 함께, 세상은 다시 한 번 그 흐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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